입을 다물고 그림을 그리고 싶다.
어린 나의 아이와 함께할 무언가를 찾다가 알게 된 청주 기적의 도서관.
그때는 이곳이 나와 내 아이들을 이렇게 풍요롭게 하는 공간이 될 줄 몰랐었다.
처음에 기적의 도서관에 왔을 때는 걷지도 못하는 어린 내딸이 큰소리로 울음이라도 터트릴까봐 아이를 안고 종종걸음으로 아가방에 들어가 책을 읽어주고, 몇권의 책을 대출해 바쁘게 집으로 돌아오곤 했었다.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엄마랑 아가랑]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서로의 아이를 품에 안고 책을 읽어주기도 하면서 어느 새 우리가 함께 도서관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작은 공동체 의식까지도 갖게 되지 않았나 싶다.
2009년 2월. 기적의도서관 영어동극팀 Rainbow의 공연 [브레멘 음악대]를 보고 신이 난 딸아이가 말했다.“엄마도 연극을 했으면 좋겠다.”그 말 한마디가 힘이 되어 그해 3월에 동극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영어동극 Rainbow팀은 청주기적의도서관 학부모 영어동화모임에서 함께 공부하던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영어를 재미있게 접할 수 있도록 영어동극을 직접 공연해 보자는 바램으로 만들어진 아마추어 연극팀이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일주일에 한번씩 모여 연극 선정, 희곡, 소품, 음향, 조명, 연기, 연출까지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면서 하나의 극을 만드는 일이 몸과 마음이 굳은 평범한 아줌마들에게 가능할까 싶었다. 그러나 다양한 끼를 감추고 있는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과 열정을 갖고 서로를 존중하면서 하나의 극을 완성하는 과정을 직접 경험하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공연을 처음 올리는 날, 무대막 뒤에서 떨리는 서로의 손을 잡아주며 지었던 미소는 아마 잊지 못할 것이다. 연극이 끝나고 객석에 불이 켜지면서 보이는 꼬마관객들의 표정을 읽으려는 내 눈이 참 바빴었다. 팀 결성이후 [아기돼지 삼형제],[브레멘 음악대],[헨젤과 그레텔] 총 세편의 극을 무대에 올렸는데, 새학기가 시작되면서 새로운 극을 준비하려는 이 사람들의 쉼없는 열정이 참 좋다.
도서관에서 좋은 책,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은 아이에게나 어른에게나 삶의 푸념이 아니라 삶의 발견을 할 수 있게 한다.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끊임없이 하고 싶은 것들을 꿈꾸게 하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와 관련된 책을 찾아들게 만든다. 이제 6살, 4살이 된 두 딸아이들은 엄마인 나를 통해 도서관을 알게 되고, 도서관을 아직은 책이 있는 놀이터쯤으로 생각하면서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다. 이 아이들이 스스로 도서관을 찾아올 수 있을 만큼 자라면 이곳에는 책이 있고, 그 책을 읽는 사람들의 머리위로 동그란 꿈들이 도서관 천정을 떠다니면서 서로의 꿈에게 이야기를 건네고,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면 눈빛을 마주칠 사람이 바로 옆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청주기적의 도서관 소식지 기고문
사회적인 보살핌을 받아야하는 결손가정의 아이들이 방과후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처음 봉사활동을 시작했을 때 센터장이 하는 말이, 이곳의 아이들은 행동과 말이 많이 거칠다는 것...그 아이들의 마음은 이미 큰 상처를 받아 겉으로 보여지는 것이 그렇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에게 일주일에 한시간 정도씩 영어음악활동을 지도하는 봉사활동이었다.
지난 학기에 평생교육원에서 유아영어음악과정을 수료하고 난 후, 나름 의미를 갖고 시작했고 아동센터의 아이들과 친근한 관계형성도 된 듯했지만, 내 교습법의 미숙함과 아이들의 산만함으로 수업진행이 수월하진 않았다.
아이들에게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 없이 재미있게 수업을 진행하려 했지만, 그건 오히려 아이들에게 장난이 허용되는 수업이라는 인식이 들게 했던 것도 같다. 아이들을 통제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던 날은 1시간도 되지 않는 수업에도 완전 녹초가 되어서, 그날 남은 하루가 내내 답답하고 맥이 빠졌었다.
무엇이 문제일까...이 녀석들 왜 이렇게 사람을 힘들게 하는 걸까라는 생각, 남들보다 더 많이 배우고 익히려고 노력해야 할 녀석들이(비록 아직은 모르겠지만) 배움의 기회를 발로 차버리는 건지 안타까운 생각, 이 수업을 계속 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하는 회의감...매주 수요일은 나에게 부담되는 날, 스스로를 단련하는 날, 맥이 빠지기 일쑤인 날,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아지는 날이었다. 세살 된 작은 딸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아이에게 미안한 부분도 있었다. 처음엔 내가 수업하는 동안 엄마를 찾으면서 울거나, 떼쓰기도 하고...교실로 들어와 수업에 방해가 되기도 했다. 최근 들어선 많이 떼를 쓰지는 않지만, 딸아이의 기분이 그렇게 좋지는 않은 듯 하다. 이제 말문이 터진 딸아이가 "엄마, 수업하지 마~"라는 말을 하는 걸 보면......
후...어느 정도는 핑계 같기도 하지만,
신종플루가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는 요즘 어린 딸아이를 데리고 사람이 많은 곳을 가서 수업을 한다는 것이 더럭 겁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겨울동안 수업을 그만하겠다고 센터장에게 오늘 말을 했고, 수업이 끝난 후 아이들에게 말을 해야하는 데, 몇번을 망설이다가 어렵게 이야기를 했다. 내년 봄에 다시 오겠노라고...
수시로 나한테 엉겨붙고 매달리면서도 때때로 쌩하고 바람이 불정도로 날 모른척 하기도 했던 한 여자아이의 반응이 못내 잊혀지지가 않는다. 내가 쭈뼛 쭈뼛 말을 꺼내자 금새 눈치를 채고는 신나 죽겠다는 듯이 크게 웃어버리더니, 고개를 푹 숙이면서 재미없는 학습지로 눈을 돌려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내 눈을 비껴가며 재빠르게 다른 곳으로 장소를 이동하는 아이들...아~하면서 이미 몇번 경험해 보았다는 눈빛으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내 손을 놓고 교실을 벗어나 버리는 것이다.
아이야!
지금 난 너의 지나치게 호탕했던 그 큰 웃음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어찌해야 할까...내가 놓지 말아야 할 끈을 놓아버린 것은 아닐까?
아니, 애초에 내가 너희를 찾아가 만나지 말았어야 했을까?
나의 책임지지 못할 봉사 욕구(?)가 너희들의 마음에 또 상처를 입힌 건 아닐까?
잠이 안 올만큼 심난하다.

